2015년 5월 6일 수요일

[독립투사의 어머니]*_하나님의교회에 다니는 안상홍님 어머니하나님 바라기

[독립투사의 어머니]*_하나님의교회에 다니는 안상홍님 어머니하나님 바라기

[출처] 독립투사의 어머니 (하나님의교회 전도축제 ♡) |작성자 종이컵




독립운동가 어머니들의 교육법에 관한 기사를 우연히 읽게 되었습니다.

‘독립운동가’ 하면 떠오르는 세 사람, 백범 김구 선생, 안중근 의사, 윤봉길 의사.
위대한 독립운동가 뒤에는 위대한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백범 김구 선생의 어머니이자,
후에는 독립운동가들의 어머니가 된 곽낙원 여사는
아들이 어릴 때부터 회초리로 엄하게 키웠다고 합니다.

상민의 신분에도 불구하고 글공부에 열중하여 과거까지 응시하는 아들을 보며 그가 여느 아이와 달리 범상치않음을 자각하면서 아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헌신의 노력을 다하였고, 아들이 옥에 갇혔을 때 식모살이를 하여 번 품삯으로 하루 세 끼 사식을 넣어주며 길고 긴 옥바라지를 감당했습니다.

아들과 중국에서 지낼 무렵 자신의 생일에 청년들이 잔칫상을 차릴 계획을 미리 눈치채고는, 돈을 주면 내 입맛대로 음식을 만들어 먹겠다며 그 돈을 받아 자신의 쌈짓돈과 보태어 권총을 사와, ”이역만리에서 독립운동을 한다는 사람들이 생일잔치가 다 무엇이냐! 이것으로 왜놈을 죽이라” 할 만큼 기개 충천하여 독립운동가들을 격려하였다고 합니다.

반면 안중근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는 아들의 적성을 최대한 존중하여, 선비의 신분임에도 말 타기와 총 쏘는 법을 연마하는 아들을 나무라지 않고 온화한 성품으로 지원했습니다. 만일 그런 모습을 질책하며 글공부만 독려하였다면,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실수 없이 저격한 안중근의사도 없었을지 모른다는 정설까지 전해져온다고 합니다.

하얼빈 의거 후 유죄 판결을 받은 아들에게,

“만인을 죽인 원수를 갚고 의를 세웠으니 무슨 잘못을 저질렀단 말인가. 구차하게 항소하느니 떳떳하게 죽는 것이 낫다”

며 올곧은 정신력으로 아들을 보낸 후 시베리아, 상하이에서 독립운동에 가담하였다고 합니다.

25세의 젊은 나이에 순국한 윤봉길 의사.
그의 어머니 김원상 여사는 무엇보다 아들의 교육에 열성적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윤봉길 의사가 보통학교(초등학교)마저 중퇴하고 만 것은,
공부보다 더 중요한 것이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이라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장터에서 만세를 외치다 피 흘리며 죽어가는 어른들을 보고,

“일제 하수인이 되라는 학교에는 나가지 않겠다”

며 학교를 그만둔 윤봉길이 일본군 행사 때,
폭탄을 던진 죄명으로 장렬한 죽음을 맞이하기까지 가슴 속 한가운데에는
어릴 적부터 어머니가 심어준 애국심이 불타고 있었던 것입니다.

연약한 아낙네라도 자신의 태에서 나온 아들이 나라를 위해 공헌한 훌륭한 사람으로 역사에 길이 남길 바라며 처절하기까지 한 뒷바라지를 마지않았던 모성애에 숙연함마저 듭니다. 이 시대, 조국의 독립을 위해 투쟁하는 또 다른 독립투사들과 그들의 거사를 돕는 위대한 어머니가 계십니다.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닌,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의 권세와 나라를 통째로 집어삼키려는 악의 영들에 대항하는 하늘나라 독립운동가들과 어머니하나님이십니다.

어머니하나님의 교육 방식은 오직 사랑입니다.

하늘나라가 독립하는 그날까지 아들딸들을 위한 끊임없는 기도에 숨이 차서 헐떡이시면서도 쉼을 얻지 못하시는 어머니하나님. 어머니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자녀들이 영광 받을 훌륭한 독립투사로 하늘 역사에 길이 남는 것이겠지요. 위대하신 어머니하나님의 사랑 아래, 하늘나라 독립을 위한 전진을 멈추지 않는 투사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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